지난 금요일, 임시 총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벌금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올챙이의 등떠밈을 받아
오랜만에 통통 식구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터전으로 들어오자, 먼저 오신 분들이 다들 신기한 일로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서(너무 오랜만이라)... 조금 민망(+반성)하였습니다. ^^
냉이가 시작할때 2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말했을 때
사실 믿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회의는 길었습니다.
저녁 8시부터 시작한 회의가 12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지요.
조금 늦게 시작한 걸 감안해도 거의 4시간 회의를 한 것 같습니다.
막판엔 저의 엉덩이(?)가 저에게 굉장히 심하게 항의를 하였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거라고"
사실 회의에 가기 전에... 올챙이랑 대화하면서
"내가 통통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몇 가지 해도 돼?"라고 물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통통에 대해 교사회나 아마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견일 수 있기에
그 파장을 생각했는지 올챙이는 "왠만하면 그냥 앉아 있다 와요(?)" 라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냥 앉아 있다 오려고 했습니다.... ^^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한마디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고,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고민을 질문의 형식으로 던졌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우리가 공동육아라고 할 때, 그 공동육아는 뭔가 먼저 공동육아를 한 사람들이 정해 놓은
그것을 하는 것을 공동육아라고 하나요?
아니면, 여긴 모인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을 공동육아라고 하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몇 분이 "후자"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나무와 잘살자였습니다)
그래서 사실 좀 놀랬습니다. 저는 그동안 "전자"라고 느껴 왔었거든요.
(사실 나중에 계속 이야기하다보니... 저는 여전히 교사회를 비롯해서 몇 분들에겐
"전자"의 생각이 많다는 결론에 도달하긴 했지만요. ^^
그래도 전자의 기초 위에 후자를 지향하기 원하시는 마음은 다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어쩌면, 저를 포함해서 통통을 힘들어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아마들의 상당수는
(처음부터 통통이나 공동육아 정신을 구현하는데 관심이 깊었다기보다,
그냥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주고 싶은 마음에 찾아온 아마들...)
그 "전자"라고 느낀 것 때문에 적응이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통통에 어떤 의견을 냈을 때, 늘 "그건 공동육아 정신에 맞지 않아요" 라든지,
"통통의 문화는 안 그래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바뀔거예요" 등의
대답이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아... 뭔가 공동육아라는게 함께 만들어 나간다기보다 정해진게 있고, 나는 그걸 따라야 하는거구나",
"다음 부터는 의견을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야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켜야 할 철학이 있습니다.
제가 그걸 부정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아마가, 다 그 철학에 100% 공감해서 그걸 따르려고 여기 온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 철학은 어쩌면 그런 갈등과정을 통해서 배워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배워진다고 하는 것은 어떤 객관적인 지식전수를 통해 이루어진다기보다,
어떤 결정된 철학 뒤에 있는 깊이 있는 교육에 대한 성찰들을
갈등과 토론을 통해 체득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임시총회가 그런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분명한 철학이 있고, 그걸 아마들과 온전하게 공유하고 싶었던 교사회에겐
조금 힘든 시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약간 아웃사이더(?)에 있던 저로서는....
토론을 통해 공동육아의 좋은 정신을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서로 다른 주장으로 약간 미묘한 감정이 흐르기도 했지만...
서로를 신뢰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는게 느껴져서 너무 좋았습니다.
이제서야 감히 나는 공동육아란 이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라고 말해주는
선배 조합원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듣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서로의 다른 의견을 경청해 주시는 분위기도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그 날도 말씀드린 것처럼... 통통에 들어온 이후 1년이 넘었는데...
그 날에서야 저는 모든 아마들 앞에서 "솔직한" 제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도토리 말처럼... "여기는 내가 솔직한 내 생각을 말해도 안전한 곳이야"라는 느낌을 처음 받았습니다.
벽이 허물어지고, 아마들이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 공동육아라는게 이런 거구나" 하고 배워졌습니다.
(아직... 공동육아의 ㄱ 자 정도 밖에 모르는 거겠지만요)
모임이 끝났는데, 그 날은 평소와 달리(?) 바로 집에 가기가 싫었습니다.
담배도 안 피면서, 느린걸음과 짬뽕, 수수의 "회의후 담배 타임"에 끼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 나눴습니다.
뒤에 나온 두부를 비롯하여 몇 분이 "봄돌, 같이 한잔 하러 가요"라고 했을 때,
사실 다음 날 강의 일정 때문에 부담이 되어, "저는 여기까지 하고 갈께요" 라고 했지만,
마음은 마을 까페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날 이전의 통통과 그 날 이후의 통통은
저에게 전혀 다른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이 말 책임질수 있을라나? ㅋㅋ)
어려운 시기입니다. 교사회도 아마들도 많이 힘들 수 있는 시간인데...
다들 힘내시길 응원합니다. 제가 상황적인 여건이 어려워 적극적으로 더 힘이 되진 못하지만
할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고맙습니다. 공동육아를 함께 하게 해 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