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 고분 내인생 (퍼옴)

by 아지 posted Nov 2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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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종이돈이 생기면 몽땅 과자를 사먹어야지 했습니다.

어른들은 왜 종이돈을 여러 장 두고도 돈 없어 큰일이다 하는지 알 수가 없었죠.

   

소녀였을 때 나는 나만의 방과 침대가 생기면 종일 거기서 뒹굴어야지 했습니다.

어른들은 왜 안방을 두고도 쫓기고 몰려다니며 비워두는지 알 수가 없었죠.

   

성년식 즈음에 나는 차가 생기면 새벽 두 시라도 동해바다를 향해 달려야지 했습니다.

어른들은 왜 차를 두고도 기껏 일터와 집만을 오가는지 알 수가 없었죠.

   

신혼 초 나는 작으나마 변변한 집이 생기면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리라 했습니다.

집주인들은 왜 마당 끝까지 방을 늘여 전세를 들이는 데만 열올리는지 알 수가 없었죠.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아이가 건강하고 밝게만 자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했습니다.

학부형들은 왜 성적 때문에 멀쩡한 아이를 한심한 아이로 몰아 부치는지 알 수가 없었죠.

 

어제, 늦은 밤 차를 몰고 슈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게는 여러 장의 종이돈이 있어.

그런데 방금 과자 같은 건 사지 않았지.’

   

이제 돌아갈 방에는 물론 널찍한 침대가 있어.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속 편히 드러누울 수가 없지.’

   

이렇게 꽤 멋진 차도 있어.

그런데 한 번도 새벽 두시에 동해바다를 향해 달려본 적은 없지.’

   

그러고 보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을 때에도

꽃은 심었지만 늘 뭔가에 바빠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몽땅 시들게 했네.’

   

아이도 건강하고 밝게 자라주었어.

헌데 그것만으로는 밥 먹고 살 수 없다며 피곤한 아이를 흔들어 깨우지.’

  

인생이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인생은 참 원하는 대로 되었습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을 자꾸만 바꾸었지요.

하나가 이루어지면 더 큰 것으로.

그 탐욕이 부끄러운 줄 모른 채 인생 참 고달프다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고분고분 인생은 내 바람을 다 들어주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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