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모처럼의 도봉방 아빠 방모임.
터전으로 가는 길에,
냉이, 하마, 고래가 포차에서 술먹는 장면을 발견,
고래를 타일러 풍경에게 들여보내느라
어쩔 수 없이 소주 한 잔을 마심.
오징어 튀김하나를 우물거리며 터전으로..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음,
백두방 구석에서 거미 집짓는 소리가 나길래, 슬쩍 들여다보니
아빠들이 허리를 동그랗게 구부리고 실뜨기 모드
오늘은 아빠들이 얘들 인형만들어주는 날!
담쟁이가 천조각에 정성껏 그려온 고양이를
모두가 예쁜 실로 감침질.
색연필은 하늘색,
해삼은 분홍색,
초코는 파랑색,
바위는 어쨌든 예쁜 색...
한귀퉁이에 찬밥처럼 버려진 빨간 실 한뭉텅이를 잡긴 잡았는데
두려움 반, 설레임 반..
노안탓으로 바늘에 실꿰는 게 가장 어려웠고,
나머지 전과정이 버금가게 어려웠음.
빨간 실로 엮다보니, 고양이가 호랑이처럼 보여 걱정도 됐으나,
마지막 실밥을 엮는 순간, 모두가 입을 모아
발가락이 가장 잘 했다고 외쳐줌.
긴가민가 담쟁이 안색을 살피니,
만화속 여주인공이 '어쩜!' 할 때의 그 표정이었음.
역시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겸손함이었던가!
바느질을 하다보니,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자연스럽게 두런두런.
화기애애, 친목도모
촉수낮은 전구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은은한 감동.
어두웠던 과거를 한 토막 흘리고 싶은 강한 충동.
다음 번에 아빠 방모임 때도 이거 하자고 함께 외침!
색연필은 서현이가 아파 급히 귀가,
초코는 몸이 아파 역시 귀가,
해삼, 바위와 함께 간단히 2차.
회나 한접시 먹을까요? 해삼 제안을 무시하고
포차로 가서 오징어무침을 시킴.
그런데, 주문과정에서 해삼이 오삼불고기로 메뉴 변경.
합석한 냉이와 하마가 오징어만 골라먹는 바람에
불고기만 몇 점 먹게 됨.
두번째 안주로 바위가 계란말이를 시킴,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술안주.
이 정도에서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해삼이 우산끝으로 치킨뱅이를 가리킴
바위와 나, 히히거리며 따라감.
해삼이 치킨을 시켰으나, 화장실 간 사이
메뉴를 골뱅이 무침으로 변경.
치킨... 계란말이만큼이나 싫어하는 안주임.
골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해삼,
기어이 닭 반마리를 추가하심
날개부터 꼬리까지 혼자 다 드심.
우리 큰 애랑 식성이 똑 같네! 감탄하며, 담배 반 값을 피움.
다 드신 해삼, 의자를 틀어 바위를 향하더니, 이후 바위와 독대.
소외감, 그리고,
자책감......... 골뱅이 때문인가?
그때 걸려온 멍부인의 전화, 전화 대리로 받는 순간,
헤헤하며, 일어서는 해삼, 카운터로 가는 해삼
'날개를 추가하시려는 걸까?
카드 긁는 소리.
고마움, 그리고,
자책감........ 해삼의 고운 심성을 오해한데서 비롯한.... 다시
화.기.애.애.
허리춤에 손을 낀 채 일제히 귀가!
참으로 보람찬 방모임이었다가 평가하지만,
아빠들은, 특히 해삼은, 다르게 느낄 수도 있었겠음.
*
참석면제된 부엉이 제외, 두꺼비, 코뿔소 보삼.
이날, 아빠들 다 모이면, 한 방 쏘겠다고
색연필이 돈다발을 복대에 차고 왔다가, 그냥 돌아가셨음.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신다면,
이후에 적절한 액션을 취하시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