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간 호빵맨

by 하마 posted Sep 2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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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시내 윤이상음악당 앞에서 손을 맞잡은 불교와 성공회 성직자들. 왼쪽부터 도완 스님, 허종현 신부, 진관 스님, 한상윤 신부, 영담 스님, 김현호 신부, 무애 스님, 최민호 수사, 이암 스님.


평양을 처음 방문한 성직자들은 북한 사회를 어떻게 볼까?
금강산 총격 사건 이후 민간단체 최초의 방북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방문단의 일원으로 지난 20~23일 평양과 백두산을 찾은 종교인들이 처음 본 북한사회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불교계에선 영담 스님(불교방송 이사장)과 불교 인권위원장 진관 스님, 법흥사 주지 도완 스님과 무애 스님, 화방사 주지 이암 스님, 그리고 성공회 에선 허종현 신부(대전교구 교무국장)와 김현호·한상윤 신부, 성공회프란시스수도회 책임자 최민호 수사 등이 한 차에 동승해 평양 시내를 돌며 의견을 나눴다. 이 가운데 평양을 처음 찾은 이암 스님과 성공회의 네 성직자는 남한에서도 진보적 종교인쪽에 속한다. 특히 성공회는 통일, 인권, 평화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성직자가 많고, 타종교에 대해서도 가장 열려 있는 교단으로 꼽힌다.

이들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도착한 직후부터 대형 건물엔 어김없이 내걸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형 초상화와 김 부자를 칭송하는 펼침막들, 평양 시내가 대부분 불이 꺼져도 홀로 불을 밝히며 하늘 높이 솟구쳐 있는 주체탑, 만수대 광장에 서 있는 거대한 김일성 동상과 김 주석의 고향인 만경대 등에 헌화하며 묵념하는 평양 주민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한상윤 신부는 “김 주석의 시신을 금수산궁전에 모셔두고, ‘어버이 수령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거나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 등의 구호와 이런 상황에 체질화된 시민들이 사는 평양은 거대한 신앙촌 같다”고 말했다. 한 신부는 박태선 장로의 신앙촌에 살던 할머니가 숨진 2004년 장례 기간 동안 부산의 신앙촌에 3일간 머물면서 신앙촌의 삶을 경험한 바 있다. 당시 나름대로 매일 연주회도 하고 신앙과 삶을 곁들인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던 그는 “노인들만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신앙촌에 젊은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며 “바깥세상에 나가 경쟁하는 것이 두려워 격리된 공간 안으로 침잠한다는 신앙촌에 대한 인상이 북쪽에서도 느껴진다”고 밝혔다. 실제 미국의 종교관련 통계사이트인 어드히런츠닷컴은 지난해 북한의 주체사상을 세계 10번째 종교로 발표한 바 있다.

이암 스님은 “끊임없이 체제를 비교하고 비판하는 상황 논리를 교육받으며 50년 넘게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평양 시내에서도 계속 남북한을 비교하며 남한의 관점으로 북을 재단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며 “발전과 부와 돈이 최고라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 한발 벗어나서, 남쪽은 가장 단기간에 우리 민족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고, 북쪽은 일본과 미국 등 세계 최강의 제국에도 무릎 꿇지 않고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 노력했다는 것을 서로의 장점으로 인정해줄 수는 없을까?”라고 반문했다.

서울의 빈민촌에서 빈자들을 돕는 나눔의집에서 일했던 김현호 신부는 “예전엔 어려운 사람들끼리 더욱더 연민을 느끼고 돕고 연대했지만, 빈자들에게까지 자본주의적 경쟁이 심어져 다른 수급자가 취직하자마자 이를 행정기관에 고해바치는 일들이 점차 나타나는 모습에 가슴 아픈 적이 많았다”며 빈자들의 자존감과 연대감이 경쟁의 논리로 대체되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최민호 수사는 “남북간의 차이만이 아니라 북에서도 굶주리는 동포들과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사는 평양 시민들, 그리고 자신감이 넘치는 고위 관리들의 다른 모습에서 일종의 분노가 일어나곤 했다”며 “그러나 이렇게 남과 북이 다름에도 서로 외면할 수 없기에 체제를 보기보다는 우리가 함께해야 할 그들의 고귀한 인간 생명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한상윤 신부는 “영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긴 하지만 왕조제도도 민주적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며 “자기 외 다른 신앙과 신념을 모두 이단시하며 적대적으로 대하는 근본주의적 사고는 종교 간에서뿐 아니라 남북관계에서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평양/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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