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아카시아에게서 들은 이야기.
저녁을 먹고 성훈이가 소파에 앉아서 빈둥거리다가
화들짝 놀라더란다.
성 훈 : 엄마, 이것 봐!
아카시아 : 성훈아, 왜?
성 훈 : 엄마, 이게 딱 맞아!
아카시아 : 뭐가?
성 훈 : 발가락이랑 손가락이랑 딱 맞아!
손가락과 발가락이 다섯씩이라는 것을 깨달은 성훈!
너무나 놀랍고 신기해 하더라고~.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하나부터 열까지를 틀리지 않고 세더라고~.
성훈이를 보면서 너무 늦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직 숫자와 글자를 모르니~.
그래도 뭔가를 가르쳐서 '배우는 재미'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스스로 '깨닫는 재미'를 느끼도록 하고 싶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똑같이 다섯이라는 것을 깨닫는 즐거움을~.
우리가 너무 조급해서 성훈이의 그런 즐거움을 빼앗지 않기를~.
차라리 우리가 무식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능력이 없어서,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깨닫는 즐거움을 오롯이 느꼈으면 싶다.
이야기 둘
이건 저녁을 먹으며 나도 함께 본 이야기.
요즘 성훈이는 입맛이 좋다.
저녁 상에서 누나 밥과 자기 밥을 둘 다 끼고 앉아서
'둘 다 먹을 거야'하더니 맨밥만 퍼 먹는다.
처음에는 그저 보고만 있다가 기어이 아카시아가 끼어든다.
아카시아 : 성훈아! 그러지 말고 반찬도 같이 먹어.
성 훈 : (고개를 푹 숙이고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내 인생이야, 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둬.
아카시아/멸치/어진 : (할 말 없음)
나중에 조용히 물어 봤다.
멸치 : 성훈아, 인생이 무슨 뜻인지 알아?
성훈 : 응, 사는 것
멸치 : 그런데 그 말을 누구한테서 배웠어?
성훈 : 누구한테서 배우긴~. 많이 들어본 말이라서 그냥 써 봤지.
성훈이는 네 살이 되도록 말을 못했다.
가끔 한 마디씩 하곤 했지만 고작 '엄마' '아빠' 수준이었다.
네 살이 되고 통통에 다닐 때가 되어도 말문은 터지지 않았다.
통통에 보내서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몹시 걱정이 되었다.
그때 우리가 조급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그리고 특별한 치료를 받게 하고 그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고, 무식했고,
그래서 성훈이를 그대로 내버려 뒀다.
그런데 지금은 말로 엄마 아빠를 삶아 먹으려 든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 다르다.
진달래처럼 이른 봄부터 피어나는 아이,
국화처럼 늦은 가을까지 피어나는 아이,
벚꽃처럼 터지듯이 확 피어오르는 아이,
제비꽃처럼 보일듯 안보일듯 피는 아이,
저마다 다 다르다.
그런데 국화 같은 아이한테 봄부터 피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면 어떻게 될까?
그런 아이한테 이른 봄부터 꽃송이를 내놓으라고
이런저런 자극을 주고 치료를 하면 어떻게 될까?
그냥 피고 싶은 대로 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알아서 피도록 잊어버려 주는 것이 좋을 일이다.
이렇게 말을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특별한 치료를 하는 사람들 눈에는 정상인 아이들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하면 더 안 되는 줄 알지만,
그래야 그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 셋
어진이는 어릴 때 낯을 끔찍하게도 가렸다.
할머니/할아버지에게도 안기지 못했다.
어디를 가든 엄마/아빠한테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별명은 '매미'였다.
우리와 있을 때는 조잘조잘 얘기를 하다가도
낯선 사람이 가까이 오면 입을 닫았다.
심지어 승강기를 타고 있다가 낯선 남자 어른이 타면
숨을 쉬지 못할 정도였다.
병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잘 논다.
또래들 사이에서 놀이를 곧잘 이끈다.
그때 우리가 조급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어진이를 괴롭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고,
그래서 어진이를 내버려 두었고,
그랬더니 스스로 알아서 자리를 잡고 사람의 꼴을 갖추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 많이 알아서 스스로 병을 만들고 스스로 옭아매는 것은 아닐까?
햇살이 올린 글 가운데 가슴에 와 닿은 것~ "놀이 십계명"이다.
1. 밖에서 놀고 싶어
2. 우리들끼리 놀고 싶어
3. 심심하도록 놔 둬
4. 우리, 놀이밥 좀 먹게 해줘
5.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와 한가운 시간 좀 줘
6. 당신들이 하는 것 놀이 아니거든!!
7. 바보들아 우리가 뭐 배울 때냐? 놀 때지~ !!
8. 우리 지금 안 놀면 놀 시간 없거든~ 아마 나중에 게임에 빠질 수도 있어
9. 우리 어른들과 함께 놀고 싶어
10. 어른들도 노세요~
하나하나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말들이다.
아이들이 심심하도록 놔 두라,
어른은 아이를 놀게 한다고 착각하지만, 그건 놀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은 놀 때지 배울 때가 아니다,
이런 말들이 마음 속에 오래 머문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은
그냥 그저 마음껏 놀게 하고,
그냥 그저 함께 놀아주는 것이 아닐까?
아카시아에게서 들은 이야기.
저녁을 먹고 성훈이가 소파에 앉아서 빈둥거리다가
화들짝 놀라더란다.
성 훈 : 엄마, 이것 봐!
아카시아 : 성훈아, 왜?
성 훈 : 엄마, 이게 딱 맞아!
아카시아 : 뭐가?
성 훈 : 발가락이랑 손가락이랑 딱 맞아!
손가락과 발가락이 다섯씩이라는 것을 깨달은 성훈!
너무나 놀랍고 신기해 하더라고~.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하나부터 열까지를 틀리지 않고 세더라고~.
성훈이를 보면서 너무 늦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직 숫자와 글자를 모르니~.
그래도 뭔가를 가르쳐서 '배우는 재미'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스스로 '깨닫는 재미'를 느끼도록 하고 싶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똑같이 다섯이라는 것을 깨닫는 즐거움을~.
우리가 너무 조급해서 성훈이의 그런 즐거움을 빼앗지 않기를~.
차라리 우리가 무식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능력이 없어서,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깨닫는 즐거움을 오롯이 느꼈으면 싶다.
이야기 둘
이건 저녁을 먹으며 나도 함께 본 이야기.
요즘 성훈이는 입맛이 좋다.
저녁 상에서 누나 밥과 자기 밥을 둘 다 끼고 앉아서
'둘 다 먹을 거야'하더니 맨밥만 퍼 먹는다.
처음에는 그저 보고만 있다가 기어이 아카시아가 끼어든다.
아카시아 : 성훈아! 그러지 말고 반찬도 같이 먹어.
성 훈 : (고개를 푹 숙이고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내 인생이야, 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둬.
아카시아/멸치/어진 : (할 말 없음)
나중에 조용히 물어 봤다.
멸치 : 성훈아, 인생이 무슨 뜻인지 알아?
성훈 : 응, 사는 것
멸치 : 그런데 그 말을 누구한테서 배웠어?
성훈 : 누구한테서 배우긴~. 많이 들어본 말이라서 그냥 써 봤지.
성훈이는 네 살이 되도록 말을 못했다.
가끔 한 마디씩 하곤 했지만 고작 '엄마' '아빠' 수준이었다.
네 살이 되고 통통에 다닐 때가 되어도 말문은 터지지 않았다.
통통에 보내서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몹시 걱정이 되었다.
그때 우리가 조급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그리고 특별한 치료를 받게 하고 그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고, 무식했고,
그래서 성훈이를 그대로 내버려 뒀다.
그런데 지금은 말로 엄마 아빠를 삶아 먹으려 든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 다르다.
진달래처럼 이른 봄부터 피어나는 아이,
국화처럼 늦은 가을까지 피어나는 아이,
벚꽃처럼 터지듯이 확 피어오르는 아이,
제비꽃처럼 보일듯 안보일듯 피는 아이,
저마다 다 다르다.
그런데 국화 같은 아이한테 봄부터 피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면 어떻게 될까?
그런 아이한테 이른 봄부터 꽃송이를 내놓으라고
이런저런 자극을 주고 치료를 하면 어떻게 될까?
그냥 피고 싶은 대로 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알아서 피도록 잊어버려 주는 것이 좋을 일이다.
이렇게 말을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특별한 치료를 하는 사람들 눈에는 정상인 아이들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하면 더 안 되는 줄 알지만,
그래야 그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 셋
어진이는 어릴 때 낯을 끔찍하게도 가렸다.
할머니/할아버지에게도 안기지 못했다.
어디를 가든 엄마/아빠한테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별명은 '매미'였다.
우리와 있을 때는 조잘조잘 얘기를 하다가도
낯선 사람이 가까이 오면 입을 닫았다.
심지어 승강기를 타고 있다가 낯선 남자 어른이 타면
숨을 쉬지 못할 정도였다.
병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잘 논다.
또래들 사이에서 놀이를 곧잘 이끈다.
그때 우리가 조급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어진이를 괴롭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우리는 아무 것도 몰랐고,
그래서 어진이를 내버려 두었고,
그랬더니 스스로 알아서 자리를 잡고 사람의 꼴을 갖추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 많이 알아서 스스로 병을 만들고 스스로 옭아매는 것은 아닐까?
햇살이 올린 글 가운데 가슴에 와 닿은 것~ "놀이 십계명"이다.
1. 밖에서 놀고 싶어
2. 우리들끼리 놀고 싶어
3. 심심하도록 놔 둬
4. 우리, 놀이밥 좀 먹게 해줘
5.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와 한가운 시간 좀 줘
6. 당신들이 하는 것 놀이 아니거든!!
7. 바보들아 우리가 뭐 배울 때냐? 놀 때지~ !!
8. 우리 지금 안 놀면 놀 시간 없거든~ 아마 나중에 게임에 빠질 수도 있어
9. 우리 어른들과 함께 놀고 싶어
10. 어른들도 노세요~
하나하나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말들이다.
아이들이 심심하도록 놔 두라,
어른은 아이를 놀게 한다고 착각하지만, 그건 놀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은 놀 때지 배울 때가 아니다,
이런 말들이 마음 속에 오래 머문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은
그냥 그저 마음껏 놀게 하고,
그냥 그저 함께 놀아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