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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21:01

졸업전에...

조회 수 3025 추천 수 0 댓글 5
||||작년에 발가락께서 소위 모임시, 조합원 일인당 한번씩 아무 글이나 포스팅해줄 것을 당부하셨는데, 미처 지키지 못하다가, 졸업 전에야 올려보내요. 요즘 제가 즐겨 읽는 시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라서 함께 감상해보시길...


작은 별 아래서(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우연이여, 너를 필연이라 명명한 데 대해 사과하노라.
필연이여, 혹시라도 내가 뭔가를 혼동했다면, 사과하노라.
행운이여, 내가 그대를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도, 너무 노여워 말라.
고인들이여, 내 기억 속에서 당신들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진데도, 너그러이 이해해달라.
시간이여, 매 순간, 세상의 수많은 사물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데 대해 뉘우치노라.
지나간 옛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여, 태연하게 집으로 꽃을 사 들고 가는 나를 부디 용서하라.
벌어진 상처여, 손가락으로 쑤셔서 고통을 확인하는 나를 제발 용서하라.
지옥의 변방에서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여, 이렇게 한가하게 미뉴에트 CD나 듣고 있어 정말 미안하구나.
기차역에서 어디론가 떠다는 사람들이여, 새벽 다섯 시에 곤히 잠들어 있어 참으로 미안하구나.
막다른 골목까지 추격당한 희망이여, 제발 눈감아다오. 때때로 웃음을 터뜨리는 나를.
사막이여, 제발 눈감아다오, 한 방울의 물을 얻기 위해 수고스럽게 달려가지 않는 나를.
그리고 그대, 아주 오래전부터 똑같은 새장에 갇혀 있는 한 마리 독수리여.
언제나 미동도 없이, 한결같이 한곳만 바라보고 있으니,
비록 그대가 박제로 만든 새라 해도 내 죄를 사하여 주오.
미안하구나, 잘려진 나무여, 탁자의 네 귀퉁이를 받들고 있는 다리에 대해.
미안하구나, 위대한 질문이여, 초라한 답변에 대해.
진실이여, 나를 주의 깊게 주목하지는 마라.
위엄이여, 내게 관대한 아량을 베풀어달라.
존재의 비밀이여, 네 옷자락에서 빠져나온 실밥을 잡아 뜯은 걸 이해해달라.
모든 사물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음을.
모든 사람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각각의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가 될 수 없음을.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무엇도 나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느니,
왜냐하면 내가 갈 길을 나 스스로 가로막고 서 있기에.
언어여, 제발 내 의도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다오.
한껏 심각하고 난해한 단어들을 빌려와서는
가볍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써가며 열심히 짜 맞추고 있는 나를.

  • profile
    도토리 2011.02.11 14:05
    삶의 여러 측면에 대해 차분히 성찰하게 만들어 주네요.^^
    잘 읽었어요 쇠똥구리~ ^^
  • ?
    거북이 2011.02.11 15:41
    시를 읽고 포탈 사이트에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를 검색해봤습니다.
    음...내가 당신과 당신의 시를 몰랐다해도 너그러이 이해해달라.
  • ?
    곰돌이푸 2011.02.12 10:26
    쇠똥구리, 좋은글 잘읽었어요^^ 에 마음이 동하여 저도 글귀하나..
    '배움이란 당신이 이미 알고있는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삶이란 당신이 알고 있는 그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리고 가르침이란 당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도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일깨우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배우며, 살며, 가르치고 있다" - 리차드바크
  • ?
    날새 2011.02.15 12:00
    이제야 글을 읽었습니다. ^^;
    한구절 한구절 마음에 닿네요
  • ?
    콩나물 2011.02.20 22:18
    통통분들은 어찌이리 수준이 높은거야. 낮은 사람 올려다보기 힘들게^^
    인용하는 글도 고품격이니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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