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011.06.24 17:56

오랜만에...

조회 수 3440 추천 수 0 댓글 8

예전에 읽었던 글인데 비도 오고 꿀꿀하던 참에 생각나서 올립니다.

 

코끝이 찡해지는 글이네요... 실화라는 얘기도 있고요...  읽으신 분들도 있을듯... 함 읽어보세요..

 

 

*************************************************************************************

 

 

 

아내에게...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 ?
    콩나물 2011.06.27 10:19

    냉이 나빳어. 아침부터 사람을 울리고 말야

  • ?
    콩나물 2011.06.27 11:04

    허걱 !!냉이가 아니구나. 색연필 이었구나. 이런 이런

  • ?
    달이 2011.06.27 11:43

    약간의 여유가 생겨 통통 홈피에 들어왔다가

    직원들 모르게 소리없이 우느라 혼났네요.

  • ?
    아지 2011.06.27 13:08

    콩나물, 냉이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 ?
    완두콩 2011.06.27 14:01

    색연필..............

    있을때 잘~~ 하세요!!

  • profile
    두꺼비 2011.06.27 18:34
    콩나물은 냉이의 지능적 안티인듯 ㅋ ㅋ
  • ?
    발가락 2011.06.29 00:05

    시 한 수로 감상을 대신합니다.

     

    제목 : 코고는 천사

     

    비오는 밤,

    아내가 코를 곤다.

    아내는 몹시 피곤했나보다.

    손을 뻗어

    겨드랑이를 더듬는다.

    날개는 없었다.

     

    이럴 수가!!!

  • profile
    색연필 2011.06.29 09:58

    ㅋ 비오는 날... 발가락의 시 자~ㄹ 감상했습니다.

    발가락의 자작시 맞죠?ㅋㅋㅋ...

     


이야기 마당

통통의 자유로운 이야기 공간 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통통 홍보 동영상 (6분 22초) 관리자 2015.02.09 29876
1863 싸움의 기술.... 7 완두콩 2011.07.20 4874
1862 크림의 글은 조합원 마당으로 옮겼습니다. ^^ 크림 2011.07.20 7528
1861 7월 23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4대강 답사 5 file 은하수~ 2011.07.19 5206
1860 (우쿨강좌 소식) 베짱이들 & 非베짱이도 보시어요~~ ^^ 5 file 도토리 2011.07.16 5002
1859 [보고]2011년 전국 순회 간담회, 분당지역을 가다 이현숙 2011.07.15 4215
1858 [노원골] 가족 캠핑 신청(19일마감) 9 냉이 2011.07.14 8403
1857 베짱이 입학식 안내 ㅎㅎ 4 도토리 2011.07.14 4850
1856 이번주 금요일, 전체 조합원 교육있습니다. 14 보리 2011.07.13 6591
1855 여름 여름 즐거운 여름~~~ 8 샛별 2011.07.12 4504
1854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9 박하사탕 2011.07.12 5150
1853 석호네도 조합원교육 참석이 투명하지 않습니다.ㅠㅠ 4 두꺼비 2011.07.11 8319
1852 [긴급] 2011년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임시총회 공고 file 이현숙 2011.07.11 3639
1851 도봉방모임 후기 11 발가락 2011.07.11 5033
1850 15일 조합원 교육에 참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1 에너지 2011.07.07 7352
1849 <베짱이 교실> 입학식(?) 안내 18 도토리 2011.07.04 4388
1848 7월 4째주 토욜 ... 시간 되시는 분 4 풍경 2011.07.01 6711
1847 도토리와 함께 베짱이의 여유를 누리고 싶으신 분~~~ 18 도토리 2011.07.01 4210
1846 [보고]2011년 전국 순회 간담회, 부산지역을 가다 이현숙 2011.06.29 7439
1845 교육소위 모임..(이번주 금요일) 2 보리 2011.06.28 6496
1844 6월 홍보소위 언제할까요^^; 3 날새 2011.06.28 7195
1843 공동구매 합니다^^ 7 날새 2011.06.28 6808
1842 여름방학때 중국 대련에 함께 가요 4 대추씨 2011.06.27 3274
» 오랜만에... 8 색연필 2011.06.24 3440
Board Pagination Prev 1 ...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 119 Next
/ 119
2025 . 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hu Jan 16, 2025)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