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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로 기르려면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제가 어렸을 적에 시골 이발소 담벼락에 붙어 있던 표어입니다. 꼭 이 표어에 감동을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구구단도 외우고, 띄어쓰기나 맞춤법도 익히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경주에 불국사가 있고, 불국사 안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데 그 탑들은 신라 시대에 쌓아 올렸다는 것도 배웠지요.

교과서나 책에 나오는 이런저런 지식을 머릿속에 많이 가지고 있으면 저절로 힘이 생기는 줄 알고 있던 때였습니다. 하기야 이것저것 많이 외워 담으면 시험을 잘 보고, 시험 성적이 좋으면 우등생이 되고, 우등생은 모범생 대접을 받고, 모범생은 반장으로 뽑히던 시절이었으니 그렇게 믿을 만하지요.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학교 우등생=사회 열등생’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에 사무치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왜 어린 시절에는 천재이던 아이들이 자랄수록 바보가 될까요?

저는 우리 교육 탓이라고 믿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한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볼까요? 그분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좀처럼 스스로 궁리해서 무엇을 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정신 차릴 새 없이 하도 많은 것을 배우다 보니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거나,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 볼 여유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1학년 때부터 이러니 학년이 올라가면 더하지요. 네댓 살짜리 아이를 보면 끊임없이 놀잇감을 끄집어내 오고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 하지, 무엇을 할 줄 몰라 가만히 있는 적이 없는데 큰 아이들은 “심심해요, 심심해요.” 하면서 스스로 일거리나 놀 거리를 찾아 하지 못합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주순중 선생님이 《첫아이 학교 보내기》(보리)에서 한 말입니다. 백번 맞는 이야기입니다. 구구단을 외우거나 개구리가 변온 동물이라는 교과서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힘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크게 보아 앎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 주거나 교과서나 참고서 같은 책에서 읽은 지식입니다. 이런 지식은 마치 여행안내 책처럼 도움이 되는 때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 실제 살아가면서는 잘 쓰지 못하고 잊어버리거나 썩히게 됩니다. 다음으로 수학 공식이나 물리학의 법칙 같은 추상 지식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삼각형이 무엇이냐?” 하고 누가 묻는다면, ‘삼각형’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삼각형은 세 직선이 만나서 이룬 내각의 합이 180도인 평면 도형이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정의(定義)라고 합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정의는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하는 일.”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삼각형이 눈에 안 보이기는 왜 안 보여요. 이렇게도 그리고, 저렇게도 그릴 수 있는데…….”

네. 그렇게 해서 삼각형은 수백, 수천 개도 그릴 수 있겠지요. 아니 셀 수 없이 많은 삼각형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그린 삼각형은 일정한 각도와 일정한 크기를 가진 특별한 삼각형이지 ‘삼각형’ 바로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릴 수 있는 삼각형은 특별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삼각형은 그런 특별한 삼각형도 포함하고 있는 더 일반적인 것이고, 특정한 크기도 없고 특정한 각도도 없는 것입니다.

끝으로 실천으로 이어지는 앎이 있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고 칩시다.

“나는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알아요.”

“나는 헤엄칠 줄도 알고, 그림을 잘 그릴 줄도 알아요.”

이때 ‘안다’는 말은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동차 운전을 할 줄 아는 것은 운전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새끼를 꼴 줄 안다는 것은 새끼를 꼴 수 있다는 말이지요. ‘능력’은 곧 힘입니다. 무엇인가 ‘할 수 있는 힘’이지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책에서 배운 지식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지는 못합니다. 수영 교본을 달달 외운다고 해서 헤엄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 부속품과 기능을 머릿속에 빈틈없이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요즈음 “창의력을 가진 아이로 길러야 한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의력은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길러 줄까 고심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습니다. 우주 공상 만화나 공상 과학 소설을 많이 읽히면 상상력이 길러질까? ‘해저 2만 리’나 ‘오즈의 마법사’ 같은 이야기를 책이나 영화로 보여 주면 상상력이 날개를 펼까? ‘백설 공주’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어때? 이렇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보여 드리고 싶은 일기 한 구절이 있습니다.


1991년 4월 30일. 화요일. 흐림.

꽃병


꽃병에 든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꼭 내가 안개꽃이 되어 넓은 꽃밭에 심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비도 되어 보고, 작은 새들이 되어서 꽃밭 위를 날아다니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아침에 꽃을 보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어서 학교에 지각을 할 뻔했다.

내일은 어떤 상상을 하게 될까? 기대가 된다.


이것은 《새롬이와 함께 일기 쓰기》(보리)에 나오는 일기 한 토막입니다. 이 일기는 이새롬이라는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쓴 것입니다. 새롬이는 도시에서 자란 아이입니다. 대체로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는 자기 삶이 없고, 교육열이 들끓는 부모들에게 들들 볶여서 아무런 창의력도, 상상력도 발휘할 힘을 기르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 아이는 놀랍게도 그 힘을 잃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아이는 꽃병에 꽂힌 꽃을 보고 이런 아름다운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요? 동화책을 많이 읽어서라고요? 아닙니다. 옛날이야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요? 천만에요. 일기를 살펴보면 이 아이는 주의력과 관찰력이 뛰어나서, 자기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살갗으로 받아들인 것을 머리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밖에서 오는 정보를 머릿속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맞아들여 그 정보가 온몸에 피처럼 흐르고 살의 일부가 되도록 한 것이지요. 외워서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늘 새롭습니다.

이 아이 부모는 옆에서 보면 무관심하다고 여길 정도로 아이를 내버려 둡니다. 아이의 시간을 빼앗지 않습니다. 손과 발과 온몸을 마음껏 ‘놀리도록’, 실컷 놀게 눈을 감아 줍니다. 눈, 코, 입, 귀, 살갗으로 세상과 만나도록 부추깁니다.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살갗으로 느끼는 것은 저마다 다릅니다. 같은 나무를 보더라도, 나란히 서서 보더라도, 이 아이가 보는 모습과 저 아이가 보는 모습은 다릅니다. 보는 아이가 서 있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보는 것이 다르면 표현도 달라집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보통 사람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표현하는 데서 생기는 힘입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조기 교육, 영재 교육의 등쌀에 못 이겨 꼭 같은 학습지, 꼭 같은 덧셈과 뺄셈, 꼭 같은 외국어 공부와 낱말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달리 보는 눈과 달리 생각하는 힘, 달리 표현하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표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시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어머니’라는 시입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서 밥도 안 먹고

장화를 신고 바다에 간다.

옷을 적새 가먼서 미역도 쫏고

자갈도 쫏는다.

손을 퉁퉁 뿔어 가면서도

자갈을 쫏는다.

바다야, 우리 엄마

옷 젖게 하지 마라.

* 적새 가먼서 : 적셔 가면서, 쫏고 : 쪼고.


《엄마의 런닝구》(보리)에 나오는 이 시를 쓴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한경화입니다. 어떤 어머니들은 이 아이가 맞춤법에 맞지 않은 글을 썼다 하여 깔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시를 쓴 아이는 서울 아이가 아니라 경북 울진에 있는 바닷가의 조그마한 분교에 다닌 아이입니다. 거꾸로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에 서울 아이에게 제주도 사투리로 시를 쓰라고 한다면 그 아이가 제주도 사투리 맞춤법에 맞게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이 시에서 맞춤법이 맞느냐 틀리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가 어떤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는지, 어머니를 얼마나 마음속으로 깊이 사랑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창조력이 드러나는 표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시 두 편을 더 살펴보고 어떤 시가 꾸밈없는 진짜 시이고, 어떤 시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꾸며서 하는 가짜 시인지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군요. 아래에 있는 시는 둘 다 이호철 선생님이 쓴 《살아 있는 글쓰기》(보리)에 보기 글로 나온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호철 선생님 처지에서 평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홍빛으로

얼굴 붉히며 가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곱게곱게 차려 입고 나뭇잎들은

긴 나들이 간다.


탐스런 감들이 예쁘게 세수하고

곶감으로 다시 태어난 모습이

꼭 우리 할머니를 닮았다.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한 향기가

온 산을 물들인다.



감홍시


감홍시는 빠알간 얼굴로

날 놀긴다.

돌을 쥐고 탁 던지니까

던져 보시롱

던져 보시롱

헤헤 안 맞았지롱 이런다.

요놈의 감홍시

두고 보자.

계속 계속 돌팔매질을 해도

끝까지 안 떨어진다.


둘 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쓴 시입니다. 만일에 앞에 실린 ‘감’을 더 좋은 시라고 여기는 분이 있다면 그런 분 밑에서는 건강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지닌 아이가 자라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 묻지 말고 스스로 시 두 편을 소리 높이 읽어 보고 옆 사람에게도 들려줘 보십시오.

요즈음처럼 하루가 다르게 정보의 양이 늘어나는 때가 과거에는 없었습니다. 동시에 요즈음처럼 정보가 쉽게 낡아 버리는 때도 과거에는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머릿속에 낡은 정보를 가득 채우려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아이들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를 보십시오. 컴퓨터에 관한 정보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새로워집니다. 따라서 낡은 컴퓨터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과거에 쌓은 지식을 아무리 많이 기억하고 있다 해도 그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할 줄 아는’ 아이로 기르는 것, 그래서 그 아이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 이것이 아이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 생명을 미래로 이어 나가려는 바람을 가진 부모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조기 교육도, 영재 교육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 모든 헛된 노력을 그만두고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산이나 들판에 나가십시오. 마음껏 뛰놀고, 구김살 없이 뒹구는 아이들의 밝은 얼굴을 보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틀림없이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을 증명해 보일 훌륭한 미래의 책임자가 될 것입니다.


-윤구병, <변산공동체학교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서, 2008년, 보리


 

 

 

  • ?
    냉이 2012.03.05 11:11
    이번주 9일 금요일 7시 30분 노원골 마을학교 2강이 있습니다.
    노원정보도서관에서 윤구병선생님 강연있어요. 함께해요!!!

    학교는 바~~~뻐^^
  • ?
    나무 2012.03.05 19:52
    감홍시 노래는 통통아이들이 잘 부르는 노랜데...^^
    윤구병선생님 강연 기대됩니다.
    통통도 바~~~~~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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