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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11768 추천 수 0 댓글 6

1. 나무 천상병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2. 나무에 대하여 / 정호승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3. 뿌리가 나무에게 / 이현주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땅 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을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두움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와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바늘 끝 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날 네가 사나운 비바람을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둥켜 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내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 가야만 했다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여러분은 몇 번 시가 참 좋으신가요? 

시 한 편이 우리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모두들 풍요로운 3월 마지막 주 되세요. 



  • ?
    고등어 2012.03.26 09:18
    다 좋으네요 뽑아서 반에 게시해 놔야겠어요
    종종 좋은 시 올려 주시와요
  • ?
    나무 2012.03.26 10:20
    나무를 좋아해서 나무이건만, 아는 시는 많지 않네요. ^^ 좋은 시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 ?
    올챙이 2012.03.26 10:32
    천상병시인의 나무란 시를 들으니 통통의 나무가 많이 생각났어요..혹시 이 시에서 나무 별칭을 얻으신건가 했어요..^^
  • ?
    큰해 2012.03.26 16:10
    오후의 여유를 좋은 시로 풍요롭게...
    전 뿌리가 나무에게 시가 무겁게 내려 앉네요..
    감사해요.
  • profile
    도토리 2012.03.27 00:39
    남고에 오래 근무하다보니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시를 참 좋아합니다.
    시 한 편이 주는 풍요로움... 참 좋지요.^^
  • ?
    보리 2012.03.27 11:12
    오~ 저도 뽑아서 반에 게시해놓으렵니다. 참 좋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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