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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9630 추천 수 0 댓글 1

지난 금요일

제가 우산을 잘못 가져갔습니다.

제 건 흰 바탕에 말그림이 그려진 우산인데,

모양이 비슷해서 착각했네요.

일찍 가져다 두었어야 마땅했지만,

오늘에서야 돌려놓게 되었습니다.

매우 죄송합니다.

 

마침, 아래 봄돌이 나무에 관한 좋은 시들을 올려놓으셨던데,

저도 사과의 의미로 예전에 좋게 읽었던 시를 올려놓습니다.

우산을 잃어 상심했던 시간에 대한

작은 보상이 되길 바랍니다.

 

 

 

 

 

  그 젖은 단풍나무  / 이 면 우

 

 
 아주 오래 전 내가 처음 들어선 숲엔 비가 내렸다

오솔길 초록빛 따라가다가 아, 그만 숨이 탁 막혔다
단풍나무 한 그루 돌연 앞을 막아섰던 때문이다 그
젖은 단풍나무, 여름숲에서 저 혼자 피처럼 붉은 잎
사귀, 나는 황급히 숲을 빠져나왔다 어디선가 물먹
은 포풀린을 쫘악 찢는 외마디 새울음, 젖은 숲 젖
은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살면서 문득 그 단풍나무를 떠올린다 저 혼자 붉
은 단풍나무처럼 누구라도 마지막엔 외롭게 견뎌내
야 한다 나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 이 숲의 단풍나무
라 생각했다 그대 바로 지금, 느닷없이 고통의 전면
에 나서고 이윽고 여울 빠른 물살에 실린 붉은 잎사
귀,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누구라도 상처 하
나쯤은 꼭 지니고 가기 마련이다.
  
멀리서 보면 초록숲이지만 그 속엔 단풍나무가
있고 때론 비 젖은 잎, 여윈 손처럼 내밀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처음 들어선 숲엔 말없음표 같은 비
후두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미는
낯선 손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아직 몰랐다 다만 여
름숲은 초록빛이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그 단풍나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고통에 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그렇다.
  
이렇게 살다가, 누구라도 한 번쯤은 자신의 세운
두 무릎 사이에 피곤한 이마를 묻을 때 감은 눈 속
따듯이 밝히는 한 그루 젖은 단풍나무를 보리라.
  

지금이 꼭 가을이 아니라도.

 

 

 

 

  • profile
    포뇨 2012.03.27 20:34
    오~발가락~쌩유~!
    오늘도 우산이 없길래 꿍시렁꿍시렁 거리면서 완전 우울했었는데 찾게되어서 정말 다행이예요 ㅜㅜ
    친구가 멀리 떠나면서 선물해주고 간거라 너무 소중했던 우산이거든요.
    우산도 돌려주시고 좋은 시도 올려주시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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