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걸음입니다.
지난번 열린마당부터 이번 임시총회와 뒷풀이까지 여러 대화를 나누어보면서 몇 가지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좀 나누어봤으면 해서 글로 올려봅니다.
첫째로, 공동육아를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동육아에 참여하는 부모들(현실적으로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고자 오는 부모들일 것입니다)은 이 시대의 평범한 부모들입니다.
철저한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을 좀 더 행복하고 안전하게 자연과 가까이하며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인 거죠.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평범한 부모들이 모였다는 생각을 하면, 서로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그 반대급부로서 나타나는 실망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좀 생뚱맞다고 느껴지는 말을 하더라도 '애 키우는 부모니까 그럴 수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또, 평범한 부모들이 모였다고 생각하면 나의 고민이나 의문을 좀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공동육아 철학을 갖고 있는 다수의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은 많이 없어질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육아가 가능할 것이고요. ( '공동육아 이념을 갖고 있는 다수의 부모들과 그렇지 못한 나'라는 도식은 환상이라고 느껴지거든요. 그게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말이죠.)
서울의 모 지역 공동육아 어린이집(멀지 않은 곳입니다)에서는
한 때, 영어교육을 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로 내분이 일어날 정도로 갈등이 심했었다고 하더군요.
공동육아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황당한 일이겠지만, 이 시대의 부모들이 모인 곳이니까 있을 수 있는 일 아닙니까?
둘째로, 우리는 '동아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데요,
하나는, 우리는 협동조합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노원지역공동육아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모두 1인 1표의 무게를 갖는 동등한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구조를 보면, 최장 4년을 함께 생활하면서 연차가 많아질수록 경험이 쌓이고, 그러다가 4년이 지나면 아이와 함께 졸업을 하는 구조이다 보니, 대학 동아리나 군대와 유사한 성격을 갖게 되는 것 같애요. 그래서, 선배와 후배라는 관념이 생기고, 4년차가 되면 말년이니 뭐니 하는 생각도 생겨나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배가 후배에게 좋은 경험과 정보를 전해준다는 긍정적인 면을 살려야 하지만, 자칫 연차가 오래 되지 않은 조합원들을 '배워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될 우려가 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신참 조합원들은 적극적으로 의사 개진과 참여를 하지 못하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완성된 공동육아의 주입이 아니냐'라는 의문들이 생겨나게 되는 걸 겁니다. 저는 이걸 항상 경계해야 된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너무 '위계에 의한 문화'에 익숙해있습니다.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을 경험할 기회도 거의 없고요. 그래서, 더욱 의식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공적인 논의에 의해 상호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측면입니다.
공동육아를 하면서, 서로서로 친하게 지내는 건 참 좋다고 생각됩니다만, 서로간의 신뢰를 사적인 관계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요한 고민거리나 결정사항들은 항상 공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고 나와야 하고,
공론을 통해 충분히 토론하고 결정은 분명하게 해야 하며, 결정한 사항은 정확하게 실천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우리의 협동조합 조직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함께 결정하고 실천하는 동료 조합원 일반에 대한 신뢰가 생깁니다.
저는 이런 과정에서 형성되는 신뢰가, 조합원 개인 간의 친밀함에 기반한 신뢰보다 더 중요하고, 조직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론을 통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 집단에서는, 그 역할을 사적인 관계들이 대신하게 되고, 그 속에서 파벌도 생기고 패거리 문화도 생기기 쉽습니다. 물론, 통통이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일반론입니다만, 우리는 항상 이런 부분을 경계하며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사실, 지난 임시총회를 마치고 몇몇 분들께, '통통에서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건 오랜만이다'는 말씀을 듣고 많이 놀랐더랬습니다.
지난 총회에서 '방 모임이 주된 공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이런 의견 역시
평조합원들의 의견이 상호 토론되고 수렴되어서, 우리 협동조합의 전체적인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고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욕구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잠깐 한라방 얘기를 하겠습니다만, 제가 참석했던 첫번 방모임에서 분명히 '알콩'님을 방대표로 결정했는데,
이후 배움소위에서 방대표가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의사 결정과정이 위와 같은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임시총회 날 들은 말씀들 중에, 백두방 아마들은 아이들 문제를 터놓고 얘기한다는 말씀이 마음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고등어께 언제부터 그게 가능하셨냐고 여쭤보기도 했었죠. 다섯살 때부터 가능했다고 하시더군요.
아이들 문제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는 건 각자가 자신과 자기 아이들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겠죠.
저는 통통에서 부모들이 성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나와 내 아이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며 민주적으로 의사결정하고 실천하는' 그런 성장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회의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조금씩 갖자는 결정에 적극 찬성하며, 꼭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두서 없이 글이 길어졌습니다.
총회 같은 자리에서 이런 얘기 길게 하는 것도 민폐고, 글로 올려서 한번쯤 읽어봐주시는 것도 좋을 듯 하여
정리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