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올린 글인데요..다시 한번 리바이벌 합니다......그냥요!!
□ 우리말에 '다르다'는 말과 '틀리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르다'는 '같다'의 반대말로서 영어로 표현하면 Different를 뜻합니다.
'틀리다'는 '맞다'의 반대말로서 영어의 Wrong에 해당됩니다.
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오늘날 21C 상생의 시대를 열어 가는 중요한 화두(話頭)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린 아이가 예쁘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아름다운 미덕(美德)입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서 이렇게 하면 성희롱 죄에 걸립니다. 똑같이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지만 한편에선 미덕이고 다른 한편에선 성희롱 죄에 해당됩니다. 서로 문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하얀 국화꽃은 주로 장례식장 같은 슬픈 일을 당한 사람에게 위로의 조화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즐거운 일, 축하의 화환으로 사용합니다. 이 또한 서로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일 뿐 어느 한쪽이 '맞다' '틀리다'할 것이 못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명당(明堂)의 자리하면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등 풍수지리에 따릅니다. 그런데 서양에서의 명당은 성당이나 교회 밑바닥을 가장 좋은 명당으로 여깁니다. 서로의 의식의 차이가 다릅니다.
금년에는 우리 나라에서 월드컵대회를 치르게 됩니다. 세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세계 시민을 맞는 우리는 이 '다름'을 인정해 주는 것이 국제화 시대 성숙된 시민의식이요 바람직한 마음가짐이 될 것입니다.
그 '다름'을 인정해 주지 않고 무조건 '내 方式대로'만을 고집하고 내 方式은 '맞는 것'이요 다른 방식은 '틀리다'라고 말해 버릴 때 갈등이 생기고, 오해가 생기고 그것이 번지면 국제분쟁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최근 프랑스의 유명한 배우인 '브리지트 바르도'가 한국인의 개고기 먹는 것에 대해 비판함으로서 국제적으로 크게 말썽이 된 바있습니다. 이 또한 식생활 문화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주장함으로서 야기된 논쟁이 되고 말았습니다. 프랑스인이 개고기를 안 먹고 말고기를 먹듯이, 한국인이 말고기를 안 먹고 개고기를 먹는 다는 이 '다름'을 서로 인정했어야 했습니다.
自然의 절후도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분명 다릅니다. 그런데 봄과 가을이 옳고 여름과 겨울은 옳지 않다(틀리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흰색의 반대는 무슨 색인가?"라고 질문하면 한결같이 '검은 색'이라고 답합니다. 흰색의 반대는 붉은 색도 될 수 있고,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검정만을 떠올리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의식 속에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의식구조, 내 편이 아니면 적(敵)이라는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러한 의식구조 하에서는 나와 '다른 것'은 바로 '틀린 것'이 되어 버립니다.
정치인(政治人)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남의 당의 이야기는 무조건 '틀리다'라고 몰아붙이기 때문에 정쟁은 끝이 없고 갈등은 더욱 증폭됩니다. 노사(勞使)간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이야기는 무조건 '틀린 것'이 되고 노사분쟁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역(地域)간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역갈등이 일어나고 남녀(男女)간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차별이니 역차별이니 하는 말이 나옵니다.
기성세대(旣成世代)와 신세대(新世代)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와 편견이 생기고 대화의 통로가 막히는 것이 아닐까요? 선진국(先進國)과 후진국(後進國)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역분쟁이 일어나고 경제전쟁이 일어납니다.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급기야는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나기 까지 하였습니다.
사무엘 헌팅턴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기독문명의 '오만함'과 이슬람 문명의 '편협함'에서 오는 충돌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지구적 차원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므로 서구의 이념이 보편타당하다는 견해가 확산되면서 각 국가간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비서구인들이 민주주의, 시장경제, 제한된 정부, 인권, 개인주의, 법치주의 같은 서구의 가치에 동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렇지 못한 것은 모두 '틀리다'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문명권에서 그것은 '다른 것'뿐이지 왜 '틀린 것'인가 라고 반발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의 흐름을 보면 지난날 「상극(相克)의 시대」에는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으로 통하였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싸우고 짓밟고 투쟁하였습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가 통하였고 이런 가운데 획일주의, 권위주의, 형식주의, 군사문화, 싹쓸이 문화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21C 지식정보화사회는 바로 「상생(相生)의 시대」입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사는 Win-Win의 시대입니다. 만명이 한 사람을 먹여 살리던 시대에서 이제는 한 사람이 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러한 상생의 시대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야합니다. 그 '다름'에서 새로운 창조(創造)가 나오고 혁신(革新)이 나오며 자율(自律)이 생기는 것입니다. 민족(民族)과 민족, 국가(國家)와 국가간에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여야 세계질서가 생기고 평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종교(宗敎)와 종교간에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궁극적으로는 至高至善의 진리에 다다를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고(思考)의 한계(限界)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이러이러하니까 상대방도 이러이러하겠지 하는
내 위주의 사고(思考)가 참으로 많습니다.
"두 손을 활짝 펴고 양손가락을 서로 사이 사이에 끼워보십시오. " 저는 강의할 때마다 교육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확인해봅니다. 저 자신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다 저와 같이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위로 올라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거의 半半입니다. 왼손 엄지가 위로 올라가는 경우도 50%나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내가 이러하니 남도 이러하겠지'라는 발상의 한계. 그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개혁도 , 변화도, 구습타파도 , 혁신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좋은 교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말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영어에 'Understand' 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상대방 아래에(Under) 서보라(Stand)라는 뜻입니다. 이 모두가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이해가 시작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이 '다름'을 인정하게 되면 오해나 편견도 줄게 되고 갈등도 줄어들고 미움도 원망도 훨씬 줄어듭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 아량도 넓어지고 용서하는 마음도 저절로 생기게 됩니다.
'맞다-틀리다'는 어찌 보면 大自然의 法則에 따라 神이 하실 일이라 생각하면 훨씬 수양하기가 수월해집니다. 성훈에 「내 착함도 자연이 알아주고, 내 원한도 자연이 풀어주며 만사이치는 사필귀정이라」하셨습니다.
우리는 맞다, 틀리다, 사시비시(似是非是)를 따지기 이전에 서로의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수양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되어집니다.
나와 부모님의 '다름'을 아는데서 참된 효(孝)가 나오고 나와 자식의 '다름'을 아는데서 참된 사랑이 나오고, 나와 아내(또는 남편)의 '다름'을 이해하는 데서 참된 부화부순(夫和婦順)이 나옵니다. 나와 사해형제(四海兄弟)의 '다름'을 아는데서 진정한 화이부동(和而不同), 화목동락(和睦同樂)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닐까요?
□ 우리말에 '다르다'는 말과 '틀리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르다'는 '같다'의 반대말로서 영어로 표현하면 Different를 뜻합니다.
'틀리다'는 '맞다'의 반대말로서 영어의 Wrong에 해당됩니다.
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오늘날 21C 상생의 시대를 열어 가는 중요한 화두(話頭)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린 아이가 예쁘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아름다운 미덕(美德)입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서 이렇게 하면 성희롱 죄에 걸립니다. 똑같이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지만 한편에선 미덕이고 다른 한편에선 성희롱 죄에 해당됩니다. 서로 문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하얀 국화꽃은 주로 장례식장 같은 슬픈 일을 당한 사람에게 위로의 조화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즐거운 일, 축하의 화환으로 사용합니다. 이 또한 서로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일 뿐 어느 한쪽이 '맞다' '틀리다'할 것이 못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명당(明堂)의 자리하면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등 풍수지리에 따릅니다. 그런데 서양에서의 명당은 성당이나 교회 밑바닥을 가장 좋은 명당으로 여깁니다. 서로의 의식의 차이가 다릅니다.
금년에는 우리 나라에서 월드컵대회를 치르게 됩니다. 세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세계 시민을 맞는 우리는 이 '다름'을 인정해 주는 것이 국제화 시대 성숙된 시민의식이요 바람직한 마음가짐이 될 것입니다.
그 '다름'을 인정해 주지 않고 무조건 '내 方式대로'만을 고집하고 내 方式은 '맞는 것'이요 다른 방식은 '틀리다'라고 말해 버릴 때 갈등이 생기고, 오해가 생기고 그것이 번지면 국제분쟁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최근 프랑스의 유명한 배우인 '브리지트 바르도'가 한국인의 개고기 먹는 것에 대해 비판함으로서 국제적으로 크게 말썽이 된 바있습니다. 이 또한 식생활 문화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주장함으로서 야기된 논쟁이 되고 말았습니다. 프랑스인이 개고기를 안 먹고 말고기를 먹듯이, 한국인이 말고기를 안 먹고 개고기를 먹는 다는 이 '다름'을 서로 인정했어야 했습니다.
自然의 절후도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분명 다릅니다. 그런데 봄과 가을이 옳고 여름과 겨울은 옳지 않다(틀리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흰색의 반대는 무슨 색인가?"라고 질문하면 한결같이 '검은 색'이라고 답합니다. 흰색의 반대는 붉은 색도 될 수 있고,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검정만을 떠올리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의식 속에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의식구조, 내 편이 아니면 적(敵)이라는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러한 의식구조 하에서는 나와 '다른 것'은 바로 '틀린 것'이 되어 버립니다.
정치인(政治人)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남의 당의 이야기는 무조건 '틀리다'라고 몰아붙이기 때문에 정쟁은 끝이 없고 갈등은 더욱 증폭됩니다. 노사(勞使)간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이야기는 무조건 '틀린 것'이 되고 노사분쟁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역(地域)간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역갈등이 일어나고 남녀(男女)간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차별이니 역차별이니 하는 말이 나옵니다.
기성세대(旣成世代)와 신세대(新世代)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와 편견이 생기고 대화의 통로가 막히는 것이 아닐까요? 선진국(先進國)과 후진국(後進國)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역분쟁이 일어나고 경제전쟁이 일어납니다.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급기야는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나기 까지 하였습니다.
사무엘 헌팅턴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기독문명의 '오만함'과 이슬람 문명의 '편협함'에서 오는 충돌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지구적 차원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므로 서구의 이념이 보편타당하다는 견해가 확산되면서 각 국가간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비서구인들이 민주주의, 시장경제, 제한된 정부, 인권, 개인주의, 법치주의 같은 서구의 가치에 동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렇지 못한 것은 모두 '틀리다'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문명권에서 그것은 '다른 것'뿐이지 왜 '틀린 것'인가 라고 반발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의 흐름을 보면 지난날 「상극(相克)의 시대」에는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으로 통하였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싸우고 짓밟고 투쟁하였습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가 통하였고 이런 가운데 획일주의, 권위주의, 형식주의, 군사문화, 싹쓸이 문화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21C 지식정보화사회는 바로 「상생(相生)의 시대」입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사는 Win-Win의 시대입니다. 만명이 한 사람을 먹여 살리던 시대에서 이제는 한 사람이 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러한 상생의 시대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야합니다. 그 '다름'에서 새로운 창조(創造)가 나오고 혁신(革新)이 나오며 자율(自律)이 생기는 것입니다. 민족(民族)과 민족, 국가(國家)와 국가간에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여야 세계질서가 생기고 평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종교(宗敎)와 종교간에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궁극적으로는 至高至善의 진리에 다다를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고(思考)의 한계(限界)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이러이러하니까 상대방도 이러이러하겠지 하는
내 위주의 사고(思考)가 참으로 많습니다.
"두 손을 활짝 펴고 양손가락을 서로 사이 사이에 끼워보십시오. " 저는 강의할 때마다 교육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확인해봅니다. 저 자신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다 저와 같이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위로 올라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거의 半半입니다. 왼손 엄지가 위로 올라가는 경우도 50%나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내가 이러하니 남도 이러하겠지'라는 발상의 한계. 그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개혁도 , 변화도, 구습타파도 , 혁신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좋은 교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말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영어에 'Understand' 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상대방 아래에(Under) 서보라(Stand)라는 뜻입니다. 이 모두가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이해가 시작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이 '다름'을 인정하게 되면 오해나 편견도 줄게 되고 갈등도 줄어들고 미움도 원망도 훨씬 줄어듭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 아량도 넓어지고 용서하는 마음도 저절로 생기게 됩니다.
'맞다-틀리다'는 어찌 보면 大自然의 法則에 따라 神이 하실 일이라 생각하면 훨씬 수양하기가 수월해집니다. 성훈에 「내 착함도 자연이 알아주고, 내 원한도 자연이 풀어주며 만사이치는 사필귀정이라」하셨습니다.
우리는 맞다, 틀리다, 사시비시(似是非是)를 따지기 이전에 서로의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수양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되어집니다.
나와 부모님의 '다름'을 아는데서 참된 효(孝)가 나오고 나와 자식의 '다름'을 아는데서 참된 사랑이 나오고, 나와 아내(또는 남편)의 '다름'을 이해하는 데서 참된 부화부순(夫和婦順)이 나옵니다. 나와 사해형제(四海兄弟)의 '다름'을 아는데서 진정한 화이부동(和而不同), 화목동락(和睦同樂)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닐까요?
지난번에도 읽고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잊고 살았나 봅니다. 다름을 인정하며 살기보다 틀리다 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군요. 요즘 저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됐어요. 하마, 다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