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논술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입니다. 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 아이들도 논술 학원에 보내는 모양입니다. 정말로 아이를 죽이고, 우리 사회를 죽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렇습니다. (다른 데서 썼던 글인데, 조금 고쳐서 다시 싣습니다. 그래서 반말투입니다. 이해하시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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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논술문 쓰기를 어려워한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타박한다. 어른들이 꼬집는 것은 네 가지이다. 요즘 아이들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는다, 말을 못 한다, 글을 못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아이들 탓이 아니다.
먼저, 어른들은 아이들이 생각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딴 생각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며 다그치기 일쑤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는 ‘아이들이 생각이 없다’라며 한숨을 쉰다. 아이들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딴)생각하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아이들을 윽박지르니~.
'생각’이란 자율권, 결정권, 선택권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것을 가져 본 일이 거의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시시콜콜하게 지시하는 분위기에서는 학생들의 생각도 이끌어 낼 수 없다. 좀 모자라도 좋고 어설퍼도 좋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그래야 논술문도 잘 쓸 수 있다.
또 어른들은 아이들로부터 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아 버렸다. 우선 책을 읽을 여유를 주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학원으로 내몰렸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선수 학습’이라고 해서, 어차피 학교에서 배우게 될 것을 가르치는 일에만 열을 올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실제 학교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있지만, 학부모들은 그런 말에는 귀를 닫아 버린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폭넓고 깊이 있게 책을 읽을 여유를 빼앗겨 버렸다.
다니엘 페나크가 지은 [소설처럼]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카시아가 추천한 책인데, 아주 얇다. 그 책을 보면 어른들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아이들로부터 책 읽는 재미를 빼앗아 가는지 날카롭게 파헤쳐 놓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도 여러 번 찔렸다. ('책 읽기는 연애와 같아서 훔친 시간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이 책에 나온다.)
말을 못하는 것도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어른들은 흔히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아이들의 말을 잘라 버린다. 사람이 어떻게 처음부터 쓸모 있는 소리만 할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쓸 데 없는 말부터 시작해서 점점 값어치 있고, 아름답고, 참된 말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것을 기다려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이를 먹고 나서도 아이들의 말은 여전히 ‘쓸 데 없는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쓸 데 없는 말을 거쳐서, 쓸모 있는 말로 나아가는 연습을 할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쓰기도 마찬가지다. 2005년 4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의 일기장을 검사하는 관행은 아동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등 헌법에 보장된 아동 인권을 침해한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글쓰기에 얽힌 첫경험이 일기일 것이다. 글이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검사받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 속에 스스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내지는 못했다.
하늘처럼 우러러 받드는 분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사범대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한 학기 내도록 글을 쓰게 하고, 당신은 그저 묵묵히 읽기만 했단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도 반듯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가족 얘기를 쓰더니 점점 아버지 얘기로 모아지는데 사이사이에 저주와 증오가 묻어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글의 느낌이 서서히 바뀌더란다. 아버지에 대해 글을 쓰려니 그를 찬찬히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그를 점점 더 깊이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한 학기를 마칠 때쯤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글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의 힘이다. 내버려두면 글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고, 마음속에 있는 상처까지도 스스로 다독일 수 있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논술문을 못 쓰는 까닭은 넷이다. 생각을 하기 싫어하고, 책을 읽지 않고, 말하고 글쓰기를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른들의 잘못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기다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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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진이와 성훈이는 저렇게 키우고 있느냐?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 아는 것과 하는 것이 어찌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불쌍한 어진이와 성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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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논술문 쓰기를 어려워한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타박한다. 어른들이 꼬집는 것은 네 가지이다. 요즘 아이들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는다, 말을 못 한다, 글을 못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아이들 탓이 아니다.
먼저, 어른들은 아이들이 생각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딴 생각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며 다그치기 일쑤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는 ‘아이들이 생각이 없다’라며 한숨을 쉰다. 아이들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딴)생각하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아이들을 윽박지르니~.
'생각’이란 자율권, 결정권, 선택권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것을 가져 본 일이 거의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시시콜콜하게 지시하는 분위기에서는 학생들의 생각도 이끌어 낼 수 없다. 좀 모자라도 좋고 어설퍼도 좋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그래야 논술문도 잘 쓸 수 있다.
또 어른들은 아이들로부터 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아 버렸다. 우선 책을 읽을 여유를 주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학원으로 내몰렸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선수 학습’이라고 해서, 어차피 학교에서 배우게 될 것을 가르치는 일에만 열을 올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실제 학교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있지만, 학부모들은 그런 말에는 귀를 닫아 버린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폭넓고 깊이 있게 책을 읽을 여유를 빼앗겨 버렸다.
다니엘 페나크가 지은 [소설처럼]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카시아가 추천한 책인데, 아주 얇다. 그 책을 보면 어른들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아이들로부터 책 읽는 재미를 빼앗아 가는지 날카롭게 파헤쳐 놓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도 여러 번 찔렸다. ('책 읽기는 연애와 같아서 훔친 시간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이 책에 나온다.)
말을 못하는 것도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어른들은 흔히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아이들의 말을 잘라 버린다. 사람이 어떻게 처음부터 쓸모 있는 소리만 할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쓸 데 없는 말부터 시작해서 점점 값어치 있고, 아름답고, 참된 말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것을 기다려주지 못했다. 그래서 나이를 먹고 나서도 아이들의 말은 여전히 ‘쓸 데 없는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쓸 데 없는 말을 거쳐서, 쓸모 있는 말로 나아가는 연습을 할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쓰기도 마찬가지다. 2005년 4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의 일기장을 검사하는 관행은 아동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등 헌법에 보장된 아동 인권을 침해한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글쓰기에 얽힌 첫경험이 일기일 것이다. 글이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검사받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 속에 스스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내지는 못했다.
하늘처럼 우러러 받드는 분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사범대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한 학기 내도록 글을 쓰게 하고, 당신은 그저 묵묵히 읽기만 했단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도 반듯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가족 얘기를 쓰더니 점점 아버지 얘기로 모아지는데 사이사이에 저주와 증오가 묻어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글의 느낌이 서서히 바뀌더란다. 아버지에 대해 글을 쓰려니 그를 찬찬히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그를 점점 더 깊이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한 학기를 마칠 때쯤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글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의 힘이다. 내버려두면 글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고, 마음속에 있는 상처까지도 스스로 다독일 수 있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논술문을 못 쓰는 까닭은 넷이다. 생각을 하기 싫어하고, 책을 읽지 않고, 말하고 글쓰기를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른들의 잘못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기다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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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진이와 성훈이는 저렇게 키우고 있느냐?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 아는 것과 하는 것이 어찌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불쌍한 어진이와 성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