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대 80의 법칙
어떤 사회든 20과 80의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개미 사회에서도 그렇다고 하죠. (개미, 맞나요?)
사람 사는 세상도 그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1) 앞에서 20
어느 사회든 앞서서 열심히 일하는 20과 그렇지 않은 80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20을 들어내면, 또 다른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운다는 겁니다.
2) 뒤에서 20
어느 사회든 적응을 못하고 힘들어 하는 20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20을 들어내면, 또 다른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운다는 겁니다.
3) 살아남기
<앞에서 20>이 20인 것은 스스로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우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이 사라지면 누군가는 다시 그런 구실을 한다지 않습니까?
80이 80인 것도 마찬가지로,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럴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앞에서 20>이고 누가 80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80도 될 수 있고, 또 <앞에서 20>도 될 수 있습니다.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80을 줄여서 <앞에서 20>으로 만드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에서 20>과 80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입니다.
<앞에서 20>이 80을 깔보고 우습게 여기거나, 80이 <앞에서 20>을 보고 비아냥거리면
그 사회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뒤에서 20>이 20인 것도 그들 잘못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을 들어내면 누군가는 또 그런 처지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누가 <뒤에서 20>이고 누가 80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뒤에서 20>도 될 수 있고, 또 80도 될 수 있습니다.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20>을 줄여서 80으로 만드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정말로 어렵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뒤에서 20>과 80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입니다.
80이 <뒤에서 20>을 손가락질을 하거나, <뒤에서 20>이 80을 보고 악의적인 불평과 불만을 터트리면
그 사회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4) 공동육아에서도~
공동육아가 아무리 아름다운 이념을 내세운다고 해도, 여기도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앞에서 20>도 있고, <뒤에서 20>도 있습니다. (이게 없는 사회는 유토피아일까요?)
조합원 가운데도 있고, 교사들 가운데도 있고, 아이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이나 잘못 때문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우연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습니다.
20 가운데 누군가는 80이 되고, 80 가운데 누군가는 20이 되기도 합니다.
(거북이를 보세요. 몇 년 동안 철저히 80으로 살다가 지금은 당당히 <앞에서 20>이 되지 않았습니까?)
저는 더 중요한 것은 인정, 배려, 소통,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넘침과 모자람을 인정하고,
그러한 서로에 대해서 서로가 배려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그래서 결국은 서로의 넘침과 모자람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
그것이 공동육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조합원, 교사회,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모두들 힘내세요.
어떤 사회든 20과 80의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개미 사회에서도 그렇다고 하죠. (개미, 맞나요?)
사람 사는 세상도 그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1) 앞에서 20
어느 사회든 앞서서 열심히 일하는 20과 그렇지 않은 80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20을 들어내면, 또 다른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운다는 겁니다.
2) 뒤에서 20
어느 사회든 적응을 못하고 힘들어 하는 20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20을 들어내면, 또 다른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운다는 겁니다.
3) 살아남기
<앞에서 20>이 20인 것은 스스로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우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이 사라지면 누군가는 다시 그런 구실을 한다지 않습니까?
80이 80인 것도 마찬가지로,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럴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앞에서 20>이고 누가 80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80도 될 수 있고, 또 <앞에서 20>도 될 수 있습니다.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80을 줄여서 <앞에서 20>으로 만드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에서 20>과 80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입니다.
<앞에서 20>이 80을 깔보고 우습게 여기거나, 80이 <앞에서 20>을 보고 비아냥거리면
그 사회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뒤에서 20>이 20인 것도 그들 잘못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을 들어내면 누군가는 또 그런 처지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누가 <뒤에서 20>이고 누가 80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뒤에서 20>도 될 수 있고, 또 80도 될 수 있습니다.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뒤에서 20>을 줄여서 80으로 만드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정말로 어렵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뒤에서 20>과 80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입니다.
80이 <뒤에서 20>을 손가락질을 하거나, <뒤에서 20>이 80을 보고 악의적인 불평과 불만을 터트리면
그 사회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4) 공동육아에서도~
공동육아가 아무리 아름다운 이념을 내세운다고 해도, 여기도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앞에서 20>도 있고, <뒤에서 20>도 있습니다. (이게 없는 사회는 유토피아일까요?)
조합원 가운데도 있고, 교사들 가운데도 있고, 아이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이나 잘못 때문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우연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습니다.
20 가운데 누군가는 80이 되고, 80 가운데 누군가는 20이 되기도 합니다.
(거북이를 보세요. 몇 년 동안 철저히 80으로 살다가 지금은 당당히 <앞에서 20>이 되지 않았습니까?)
저는 더 중요한 것은 인정, 배려, 소통,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넘침과 모자람을 인정하고,
그러한 서로에 대해서 서로가 배려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그래서 결국은 서로의 넘침과 모자람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
그것이 공동육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조합원, 교사회,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모두들 힘내세요.
걱정하지 마세요.